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(문단 편집) == 유래 == [youtube(92jKQx1yk-c)] 감곡 본당은 '''1896년 설립'''되어 무려 [age(1896-01-01)]년이나 되는, '''충청북도 최초의 성당'''이다. '''초대 본당 주임[[신부(성직자)|신부]]는 [[프랑스]] 출신의 임 가밀로 신부'''로, 초기 [[가톨릭/대한민국|한국 천주교]]와 관련이 깊은 [[파리 외방전교회]][* [[프랑스]] [[파리(프랑스)|파리]]에 본부가 있으며, [[성모 발현]] 중의 한 곳인 '기적의 패 성당'과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. 이곳의 지하 경당에 가면 [[한국어]]로 [[한국 103위 순교성인]]의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.] 소속. 1893년 [[성품성사|사제서품]]을 받은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,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. 하지만 성당이 사목지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, 사목 방문차 [[여주시|여주]]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게 되었다. 임 가밀로 신부는 이곳이 성당을 세우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. 그리고 임 가밀로 신부는 >'''"[[성모]]님,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.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."''' 라고 기도하였으며, 부엉골로 돌아가서 [[성모 마리아]]께 끊임없이 청하였다. 문제는 그 대궐 같은 집은 '''[[명성황후 민씨]]의 [[육촌]] 오빠인 [[민응식]]의 집'''이었다는 것. 1882년 [[임오군란]] 때 민자영이 도망왔던 곳이기도 하다. 그러나 1895년 [[을미사변|민자영이 죽고]]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되면서 [[의병]]들이 사용하게 되자 [[일본군]]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. 우여곡절 끝에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, [[묵주]]기도 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